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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G. B. 2020. 5. 1. 20:00


19세기 후반 때 일본은 정보수단과 교통을 확대해 일본 제국주의를 확산하려고 가라유키상을 만들었다. 가라유키상은 대게 가난한 여성들로 생계를 위해 해외 원정 성매매를 했는데 그들 중에서도 군대와 상대하는 자는 닝자군이라고 했다.
그 후에 일본에서는 2차 세계대전 때 이 제도를 가지고 군대를 상대로 위안부로 만들어 일본인 뿐만 아니라 조선인, 심지어는 외국인까지 성노예로 종사하게 했다.(다만, 위안부 종사자들 중 일본인을 제외한 타 민족은 차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위안부 제도는 2차 세계대전 때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이미 19세기에 있었던 것으로 가라유키상의 연장선이라고 봐야 한다.
(여기서 2차 세계 대전 때 생겨난 정신대와 비교해본다면 정신대는 2차 세계 대전 때 학교 단위 국민 동원령을 통해 생겨나서 대게 학생들이 많아 제대로 교육 못받은 가난한 여성으로 이뤄진 위안부와 다르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는 한 동안 주목 받지 못하다가 1980년대 때 겨우 주목 받았다.
왜냐하면 한국은 해방 이후에도 위안부 없애지 않고 국가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논리로 여전히 한국군과 미국군을 상대로 성노예 생활을 하도록 했고 사람들은 이들을 창녀로 매도했다.
사실 일반 성매매 업소에 종사하는 사람과 국가를 위해 성접대한 위안부는 완전 다른데 말이다.
거기에다 더욱 웃기는 건 한국이 해방 이후 성매매를 금지했는데도 불구하고 국가가 군인을 상대로 성매매한 위안부는 용인했다는 것이다.
덕분에 한국군 및 미군 위안부이 일하는 곳과 일반 성매매 업소를 구별 못하니 일반 성매매 업소만 탄압질 하게 되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해서는 주목 받으면서 정작 한국군 및 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해서는 주목 받지 못하고 이들에 대해 제대로 사죄 하지 못하는 일이 생겨났다. (윤금이 사건이 생긴 것도 이와 연관이 있다.) 덕분에 성노동자들 사이에서 비판이 생긴 것도 진짜 문제를 보지 못하고 일반 업소 탄압하니 그런 것이다.
따라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2차 세계대전 때 생겨난 일본군 위안부 뿐만 아니라 일본의 가라유키상, 한국군과 미군 위안부 문제도 함께 보면서 위안부 문제가 왜 생겼는지 탐구해봐야 할 것이다.(단지 위안부 피해 소녀상 가지고 반달리즘을 하는 건 오히려 갈등만 일으켜 정의연 입지만 늘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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