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뽕들은 조선 왕국이 장인을 천시해서 임진 왜란 때 납치된 조선인 도자기 기술자들이 일본에서 잘살았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정작 일본 도자기 양식 특징과 변천사 보면 일본 도자기 양식의 형성이 무조건 임진 왜란 때 조선인 도자기 제작자의 역할이 크다고 할 수가 없는데 일본사를 모르는 국뽕들이 헛소리를 하고 있다.
물론, 조선시대 이전부터 한반도에서 존재한 국가들 사이에서 일본과 무역 교류를 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일본에게도 영향을 받을 수가 있어도 일본 도자기 양식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가 없다.
오히려 명청 교체기 때 생겨난 혼란으로 인해 유럽 국가 대상으로 도자기 수출하는 것이 어려워지자 일본 도자기가 중국 도자기 대체품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말이 있어도 말이다.
괜히 국뽕 성향인 루리웹 마저 임진왜란 때 조선 왕국이 납치된 포로 찾아야 한다고 애썼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니다.
이건 전근대 시기 일본에서 인쇄업에 대해 단지 고려시대 금속 활자 기술 가지고는 설명이 불가능한 것과 같다.(참고로 17세기 일본과 중국은 서점을 금지한 조선시대와 달리 출판 사업이 존재했다.)
그리고 전근대 시기에는 어느 나라 상관 없이 기술자를 매우 천시했다.
왜냐하면 신분제 사회였기 때문이다.
이래서 전근대 시기의 상황을 민족주의적으로 해석 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왜 조선 도자기의 기술이 발전되기 어려운 것일까?
청화 백자에 들어가는 코발트 블루는 매우 비쌌고 조선시대 후기에 놋그릇 수요가 도자기보다 높아지면서 조선의 도자기 산업은 쇠퇴되어서 그런 것이다.
이 때 안성에서 놋그릇 생산을 많이해서 안성맞춤이라는 용어가 생겨났다.
그리고 고려 청자가 우수했다고? 한국 도자기, 한옥은 어떤 특색이 문화 방식일 뿐, 그것에 대해 우수성을 나무 강조하는 것은 너무 국뽕적인 사고 방식으로 타 문화에 대해 배척하게 만드는 짓이다.
참고
1) 놀랍게도, 조선에는 서점이 없었다
2) 일본의 도자기 변화.jpg
3) 도자기 국뽕은 이제 그만! 자긍심은 미래를 향해야 한다. - 유재일